매일조금씩읽고쓴다2007. 9. 17. 19:34

구본형 선생님의 <일기 쓰는 법>에 대한 글을 옮겨놓는다. 하루하루 잊지 말자..

나는 인생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하루라고 생각해 둡니다. 하루도 인생처럼 시작과 끝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 서서히 밝아지며 새벽을 거쳐 젊은 오후의 초반에 절정을 이루다 서서히 어두어지고 이윽고 밤이 익어 갑니다. 좋은 하루를 잘생긴 벽돌처럼 쌓아두면 아름다운 인생이 축조될 겁니다.

그동안 일기를 하루의 과거를 기록하는 도구로 써왔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용도로 활용해 보고 싶습니다. 즉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하루가 진행되는 것을 돕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3가지 질문들을 중심으로 하루 일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질문을 품으면 초점이 생기고 초점이 잡히면 하루 동안 이 3 가지 소중한 일에 집중하여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영감을 얻게 된 일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다. 표면의 배후에 숨어 있는 놀라운 속성을 발견하라.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을 놓치지 마라. 그것을 찾아내면 중요한 한 가지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라. 피카소나 소설가 윌라 게이터의 방식이다. 하루를 구성하는 배후는 감동, 사람 그리고 창조다. 그 외의 것들은 다 버려라.

오늘 누군가를 즐겁게 한 일

병원으로 친구를 찾아갔다. 그는 꼭 2년 전에 쓰러져 지금까지 누워 있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다. 눈이 많이 맑아졌다. 가서 누워 있는 동안 귀를 훈련하라고 말해 주었다. 잃은 것은 동작이지만, 청력은 급속히 수련할 수 있다 말해 주었다. 모든 음악을 듣고 모든 소리를 구별하고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모든 소리의 비밀과 황홀을 즐기라고 말해 주었다. 언제 어디서고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힘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 침대에서도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오늘 새롭게 해 본 일/느낌/생각

* 거리를 걸을 때 손으로 바람을 만지며 걸었다. 바람은 가슴 속으로 물결치듯 흘러들었고 모공 속으로 가을을 심어 두고 떠났다. 바람이 내 옷과 피부 사이에서 어떻게 사라져 버렸는 지는 알 수 없다.

*문병을 함께 갔던 친구 둘과 동대문 시장 길가 독일약국 2 층 식당에서 양고기 꼬치구이를 고춧가루처럼 생긴 소스에 찍어 먹었다. 그 가루 소스의 냄새가 특이하다. 사 오십년 전 어느 골목길 속에서 배어 나온 친근한 냄새 같기도 하고 아주 새로운 냄새 같기도 했다. 날카로운 철사에 생마늘을 꿰어 구어 먹기도 했다. 하루의 절반이 거리를 서성이는데 친구 하나는 새로 하늘에 대하여 책을 쓰고 싶어 하고, 또 한 친구 역시 덮어 두었던 책을 마무리 하고 싶다 했다. 2 시간 동안 나는 전에 가보지 못했던 공간에서 그리움 같은 냄새 속에 앉아 있었다. 냄새는 순식간에 기억의 일부를 복원 시킨다.

* 일기의 구성을 바꾸었다. 과거의 기록과 미래의 초점이 서로 물고 물리듯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편성했다. 사람이 있고 감동이 있고 새로운 깨달음이 있는 하루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Posted by 일상과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