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포인트를주자2017. 11. 14. 23:23

2014 12월은 4년간의 HR팀장 기간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회사 사업이 잘 안되어 인사적인 조치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했던 시기였다. 힘든 시간이 지난 후 1월이 되어 문득 제주도 티켓을 예약했다. 날짜는 3월 마지막 주 화요일로. 다 떨치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두 달 반이나 남은 기간이 길게만 느껴졌고 그날이 올까 싶었다. 그런데... 그 날이 정말 왔다. 훌쩍 왔다. 난 예정대로 가방 하나 메고 제주도 비행기에 올랐다.

 

그 날은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비가 왔다. 올레길 7코스를 걷는데 비가 왔다. 비오는데 혼자 걷는 기분. 앞뒤 사람 하나도 없고 혼자서 팔을 벌리면서 비를 맞으면서 걷는 기분. 너무 좋았다. 다 걷고는 식당에 들어가 해물뚝배기에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맥주 한 잔 들이키는 그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의 올레길 순례는 시작되었다. (7코스 걷기)

 

오늘은 혼자서 떠나는 올레길 세 번째였다. 7시 비행기인지라 새벽에 일어나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조금 늦었기에 계속 네비를 보면서 몇 분 후에 도착할지 확인했다. 그러던 차에 택시에서 김건모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대는~ 나만의 여인이여~~" 노래를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차분히 오늘 하루 즐기면서 여행을 하자.

 

비행기 좌석을 창가쪽으로 선택했다. 하늘 위에서 지형을 보면서 내가 아는 것과 맞춰보는 재미가 좋다. 비행기 고도가 6000미터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만.. 에베레스트가 몇 미터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면 지금처럼 구름위에서 저 멀리까지 볼 수 있는건가? (나중에 찾아보니 에베레스트는 8000미터가 넘는 산이다. 흐미야.. 비행기보다도 높은 산이었다..)

 

옆자리에는 젊은 여자 두 명이 앉았다. 따뜻한 남쪽 나라 가는데 두툼한 롱패딩을 입었기에 게이트 밖에서부터 눈에 띄었는데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향기가 좋네... 향긋한 화장품 냄새가 났다. 나이가 들면서 향기에 민감해지는 것은 나만 그런 것인가... 둘은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을 먹더니 이내 안대를 하고는 잠이 들었다. 아마도 제주도에 도착하면 신나게 놀겠지.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공항 4층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아침을 먹었다. 대개 아침에는 야채쥬스 한 잔 마시고 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많이 걸을 거기에 아침을 든든히 먹어주었다. 반찬에 미역이 나왔다. 역시 제주도네 하다가 생각해보니 반찬으로 미역은 서울에서도 올라오는 반찬 아니던가?! 제주도에 왔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웃겼다.

 

휴대폰 메일 설정을 '푸쉬'에서 '가져오기'로 바꿨다. 메일이 오자마다 저동으로 알리는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때에 보려고 한다오늘 하루만큼은 메일에 내 시간을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을 조절하면서 보리라 마음먹었다.

 

공항에서 나와 제주시외버스터미널로 가기 위해 안내하는 분에게 100번을 어디서 타냐고 물었더니 없어졌단다. 315번 버스를 타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버스는 15분 후에 도착이다. 택시탈까 하다가 여행왔는데 뭐 그리 급하다고 여기서도 탹시타냐 싶어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가끔 만나는 대학친구들이 나를 택시맨이라고 불렀다. 웬만한 거리는 택시를 탔는데 아마도 피곤하기도 하려니와 마음이 급해서였을 것이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시외버스터미널로 와서 화순환승정류장(안덕농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굳이 시외버스터미널로 와서 탈 필요가 없어 보인다. 지난 8월에 제주도의 버스노선이 전면 개편되어서 이제는 공항에서 바로 가는 급행도 있는 것 같다.

 

어쨋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중간에 할아버지 예닐곱분이 타셨다. '하라방들이 타니까 안 좋아할거야' 하시면서도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신다. 제주도 방언을 듣나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제주도 사투리를 쓰시는지 할아버지 말씀이라 그런지 일아듣기 어렵다. 그냥 따서로운 햇살에 몸을 맡기면서 잠을 청했더

 

안덕농협 정거장에 내려 근처 마트에서 챙모자 하나를 샀다. 아침에 모자를 들고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안 들고 온 것이 후회되었다. , 그래도 이렇게 뜻밖의 모자 득템이 있으니..

 

 

10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10코스는 하루종일 산방산과 한라산을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정말 지겹도록 본다. 걷다가 눈만 돌려도 걸리는 것이 산방산이다

 

  

10코스 초반에 화순 곶자왈이라는 곳을 지났다. 나무들이 울창하여 짬깐이지만 햇빛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가 많은 곳이었다축 늘어져있던 나뭇가지가 내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내 어깨의 무거움을 아는 듯 싶다. 고마웠다. 지나가던 바람은 내 모자를 벗겨 맨 머리로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중간에는 해변가에 발자국화석지가 있다. 보존을 위해 가까이서 볼 수는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화석지를 발견한 분이 지역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이 넓디넓은 바닷가에서 어떻게 발자국화석을 찾았을까.. ~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내 눈에도 내가 원하는 것만 보여야할텐데... 얼마전 HR과정 중에 '모든 것을 OD라는 안경을 쓰고 보자'라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관점으로, 자신이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새삼 대단한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가방없이 제주도 가기'이다. 정말 맨 몸으로 왔다. 가방은 전혀 없다. 소지품은 아래가 다다. 그런데, 가방이 없으니 좀 어색하긴 하다. 뭐랄까.. 여행자의 마인드가 장착되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까...?

 

 

11시에 걷기 시작해서 2시간 반 동안 걸은 후 1:30 정도에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지나가는 길에 들른 식당에서 전복해물라면을 먹었다. 바다를 보면서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다. 밥까지 주문해서 말아먹었다. 30분 정도 점심을 먹고 2시부터 다시 걷기 시작해서 4:30 정도에 10코스 종점에 도착했다. 5시간 반 정도 걸렸으니까 점심먹은 30분을 빼면 5시간 걸린 셈이다. 문득 발에게 고마워졌다튼튼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좋은 풍광을 호사롭게 즐기기나 했을까!

 

 

 

10코스가 다른 코스에 비해 조금 긴 것 같다. 전체가 17Km 정도 되고 5~6시간 정도 걸린다고 나와 있다. 덕분에 오늘 참 많이 걸었다. 이렇게 긴 코스를 걸을 때는 적어도 10시에는 걷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늦게 출발했더니 마음이 급해서 여유있게 충분히 즐기지를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돌아오는 버스를 미리 확실히 찾아놔야겠다. 종착지에 도착해서 커피숍에 들어가 넋놓고 커피 마시다가 공항가는 버스가 1시간에 한 대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다행히 30분에 한 대였고 때마침 도착해서 공항에 잘 올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배운 것은 역시나 '생각나는 즉시, 즉시 쓰기'이다. 지난 주 김성준 님을 만났을 때 내가 제주도에 간다고 하니 나에게 그런 말을 해 주었다. 메모지와 펜을 가지고 가서 뭔가 쓰고 싶을 때, 느낌이 드는 곳 바로 그 자리에서 쓰라고. 이번에 메모지를 준비해 갔지만 메모지에는 쓰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 메모장에 바로바로 쓰기를 했다. 찰나의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기 전에 메모장에 붙잡아매는 연습을 했던 것이 이번 제주 올레길 여행의 수확 중 하나이다.

  

준비물을 점검해 보자.

신분증

펜 하나, 조금큰 포스트잇 : 휴대폰 메모장에 쓰느라 사용하지 않았다.

. 스마트폰 충전기

. 목장갑 : 처음에는 왜 가져왔을 때 싶었는데 3시 이후 해가 뉘엿뉘엿 하면서 쌀쌀해지니까 요긴했다.

. 생수 : 지난 번에는 생수를 전혀 안 마셨는데 이번에는 꽤 많이 마셨다.

 

이렇게 나의 세 번째 올레길 탐방은 끝이 났다. 앞으로 10년 동안 올레길 전체코스를 돌아볼 예정이다. 그게 내 앞으로의 10년 10대 풍광 중 하나이다. 다음번은 내년 3월이다. 12월에 예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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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상과꿈